FIP — 왜 만들었나
ERA는 운에 너무 약합니다. 같은 투수라도 수비가 좋은 팀에 있으면 ERA가 0.50 떨어지고, BABIP이 한 시즌 .280 → .320으로 튀면 ERA가 1.00 올라갑니다. 투수 본인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그래서 통계학자 톰 탱고가 2003년에 만든 게 FIP. "투수가 완전히 컨트롤하는 것만 보자"는 아이디어. 그게 바로 삼진·볼넷·홈런 세 가지입니다. 페어 지역으로 들어간 공은 수비수가 처리하는 거니까 빼버립니다.
계수 13·3·2는 각 사건의 득점 가치를 반영한 가중치. 홈런 1개가 볼넷 4.3개와 같은 피해, 삼진은 -2(투수에게 좋음). cFIP는 매년 리그 평균 ERA에 맞춰 보정하는 상수로 메이저는 보통 3.10, KBO는 3.30 부근. 덕분에 FIP는 ERA와 같은 단위(0~5 영역)로 직관적으로 비교됩니다.
FIP 등급 — 어디가 좋은가
KBO는 타고투저(타자 우세) 리그라 평균 FIP가 메이저보다 0.5 정도 높습니다. 같은 3.50도 메이저에선 평균, KBO에선 에이스 영역으로 평가가 다릅니다.
ERA vs FIP — 핵심 비교
한 투수의 ERA와 FIP를 같이 보면 다음 시즌이 보입니다. ERA가 결과, FIP가 원인이라 시간이 지나면 ERA가 FIP 쪽으로 회귀(평균 복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ERA 2.50인데 FIP 4.00이면, 삼진은 적고 볼넷·홈런은 많은데 수비·운으로 결과가 좋게 나온 케이스. 다음 시즌엔 ERA 3.50~4.00으로 회귀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ERA 4.50인데 FIP 3.20이면 진짜 실력은 에이스급인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 — 다음 시즌 ERA 3.20대로 반등 예상.
박찬호 vs 류현진 — 두 한국인 통산 FIP 추정
박찬호 통산: ERA 4.36 / 추정 FIP 약 4.40 — ERA와 FIP가 거의 같음. 실력대로 결과가 나온 케이스. 다승보다 K/9 7.74·BB/9 4.11의 균형으로 평가됩니다.
류현진 통산: ERA 3.27 / 추정 FIP 약 3.60 — ERA가 FIP보다 약간 낮음. 즉 수비 도움과 운이 약간 더 좋았던 셈이지만, FIP 3.60 자체가 에이스 영역. K/9 7.97·BB/9 2.01의 압도적 컨트롤이 두 지표 모두를 끌어내린 결과.
두 사람의 K/9는 거의 같은데(7.74 vs 7.97) FIP에서 0.80 차이 — 이건 류현진의 BB/9가 박찬호의 절반(2.01 vs 4.11)이고, 홈런 허용도 더 적었기 때문. 볼넷·홈런 둘 다 FIP에서 무거운 가중치(3·13)를 받는 항목입니다.
KBO 적용 — 후라도·류현진의 2026 시즌
후라도(삼성) — ERA 2.40 / IP 63⅔ / K 46 / BB 10 / 추정 HR 7. 추정 FIP 약 3.20. ERA가 FIP보다 0.80 낮음 — 수비 도움 + 운이 더해진 결과. 진짜 실력은 K/9 6.5 + BB/9 1.4의 컨트롤형 에이스. 다음 시즌 ERA 3.00대 회귀 가능성.
류현진(한화) — ERA 3.42 / IP 52⅔ / K 47 / BB 추정 12. KBO 복귀 시즌 FIP 추정 약 3.50. ERA-FIP 차이가 작아 "결과 = 실력". K/9 8.0의 안정적 탈삼진과 낮은 BB/9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해석 실전 — 3가지 케이스
한 투수를 평가할 때 ERA·FIP·BABIP을 같이 보면 운과 실력을 빠르게 분리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 1. ERA 2.80 + FIP 2.90 + BABIP .290 → 진짜 에이스. 세 숫자가 일치. 다음 시즌도 비슷한 결과 예상.
케이스 2. ERA 2.80 + FIP 4.20 + BABIP .250 → 거품 ERA. BABIP이 평균(.300)보다 낮아서 운으로 ERA가 낮음. 다음 시즌 ERA 4점대 회귀 위험.
케이스 3. ERA 4.50 + FIP 3.40 + BABIP .340 → 불운한 에이스. BABIP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안타가 많이 떨어진 상황. 다음 시즌 ERA 3점대 반등 예상.
FIP의 한계
FIP는 완벽한 지표가 아닙니다.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 1. 홈런 가중치가 크다(13). 한 시즌 홈런 운이 좋아서 HR/9가 낮으면 FIP가 ERA보다 낮게 나옵니다. 그래서 홈런 운까지 제거한 xFIP(eXpected FIP)도 함께 사용 — 리그 평균 홈런/플라이볼 비율로 보정.
한계 2. 인플레이 타구의 질을 무시. 약한 타구만 맞는 투수와 강한 타구만 맞는 투수가 FIP에서 같게 평가됩니다. 이걸 보완한 게 SIERA(Skill-Interactive ERA) — 타구 종류까지 반영.
그래도 FIP는 단순함과 직관성에서 여전히 1순위 보조 지표. 입문자는 ERA + FIP + BABIP 세 숫자만 같이 봐도 90% 충분합니다.